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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성경연구/교회

3. 교회개혁의 시작, 새로운 판을 짜는것!

by ezrabible 2022. 7. 6.

1. 교회개혁이 필요할까?

2. 교회 개혁은 무엇일까?

3. 교회 개혁의 시작, 새로운 판을 짜는 것

4. 교회 개혁의 주체와 대상

5. 새로운 교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

6. 교회개혁 가정에서 시작되다.

7. 가정교회는 기존의 교회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5. 새로운 교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

 

 

 

3. 교회개혁의 시작, 새로운 판을 짜는것!

 모두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교회에 어느정도의 불만족이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조금이라도 깨어있는 이들은 꽤나 불편한 현실을 많이 맞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계속 현재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고 기존에 배워왔던 관습에 따라서 지금의 자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다.

 

 새술은 새부대에 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용어가 있다. 이 말을 조금 바꾸어서 새로운 판을 짜는것이라고 하면 조금 과격할까?

 

 용어사용에 적절한 예의와 균형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지만, 느낌적으로 새로운 판을 짜는것이 좀 더 어울리는 듯 하다. 대부분의 문제는 지금의 교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서 발생한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다면 사실 희망은 넘쳐난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대부분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더 큰 상처와 아픔만 남겨진채 교회가 둘로 나뉘거나 뿔뿔이 흩어진다는 사실에 있다. 그렇게 흩어져서 또 기존의 문제들을 그대로 담습한다. 그래서 사실 우리에게는 별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에 맞서서 싸우자니 기존에 그 결과들을 우리가 지켜봐왔고 다른 어떤걸 해보자니 본것이 없다. 경험한것도 없다. 그러니 그냥 현재에 그대로 있으면서 적절한 타협과 함께 이것이 최선이다라는 스스로의 위안을 삼으면서 변화 없이 문제들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를 수용하면 그 문제는 더 커지고 후에는 양심이 무뎌지고 감각이 상실하여 무엇이 문제였는지, 우리가 잘 가고 있는지 그 길을 아예 잃어버린다. 분명히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지만, 감각이 상실하고 방향성을 잃은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보였으나 타협과 함께 우리는 완전히 헤메고 제자리를 도는것도 아닌 퇴보의 길을 점점 가고 있을 수 있다.

 

새로운 교회, 새로운 모델.

 

그것은 무엇일까? 알수 없다. 본질은 명확하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 사랑하며,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것.

 

본질에선 그 어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본질이라는 것이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추상적이다보니깐 사람들은 이 본질에 어떤 형태를 채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채워진 형태는 예로 들면, 이웃사랑에는 가난한자들을 구제하는것, 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하는것, 등의 구제사역이 있을 수 있고 복음을 아직 듣지 못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인도하여 그들이 회심하게 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둘은 차이가 있으나 우리는 위 2가지 형태를 이해한다. 왜냐하면 현재 위 2가지 형태를 교회들이 실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난건 저 2가지를 행하고 있는 이들끼리 때로는 서로 싸운다는 것이다. 구제사역이 현시대에 필요한 일이다. 아니다 말씀으로 복음을 전해서 회심하는것이 더 중요하다. 등으로 싸운다. 그런데 그 두가지 모두 제일 중요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것의 한 형태일 뿐인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형태, 모습은 더 다양해질수 있고 더 많아질수 있다. 그리고 현 시대에 맞게 어느정도 바뀔 수도 있다. 그 본질은 이웃사랑이라는 큰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모양은 정말 다양한데 우리는 그 다양한 모양을 쉽게 그려내지 못한다. 본것만 그릴수 있지 보지 못한건 그리지 못한다. 그러나 상상은 할수 있다. 물론 그 상상력에는 꽤나 제한이 있을수 있지마 말이다.

 

 

어떤 모델이든 괜찮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자유롭게 실천하자!

 

본질은 더 이상 논하지 않아도 될정도로 우리는 많이 배웠다. 본질에 있어서 큰 이견차이는 없는걸로 알고 있다. 그 세부적인 사항,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그 본질을 담아낼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반응한다.

 

 그런데 그 본질을 담아내는 그릇과 모양이 기존에 없던 모습과 형태라면 사람들은 이상반응을 보인다. 익숙하지 않기때문에 어색하다. 그래서 거부감을 처음에는 느낀다. 우리가 낯선곳에 가면 긴장하듯이 낯선 모습은 항상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원래 인간은 익숙한것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게으름이라는 속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더 깊이 들어가보면 이 게으름도 죄다.

 

 익숙할때쯤이 되면 우리는 그 익숙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착화되고 점점 생각이 굳어진다. 어쩔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다. 그러니 항상 익숙해질때 환경과 여러가지 것들을 인위적으로 주도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새로운 교회 모델의 시작은 가볍고 자유롭게

 

 이러한 새로운 교회의 모델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하면 좋을까? 그리고 어떤 멤버들이면 좋을까?

 그 시작은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가정만큼 친밀하고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작은 단위는 세상에 없다. 두세사람이 있는 곳에 예수님도 함께 계신다고 하셨으니, 가정에는 아내와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다. 자녀들이 없더라도 최소한 2명이라는 성경의 최소단위의 조건이 주어진다. 그러니 모든 교회가 사라지고 모든 신자들이 방황하더라도 우리는 최소한의 형태의 교회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 시작의 단위가 바로 가정이다.

 

 하나님이 의도했는지까진 알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성원을 마련해 주신듯 하다. 그것이 가정이라는 굉장히 독특하고도 신비스러운 곳이고 또한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많은 사역자들이 교회사역은 잘 하는것 같지만 가정에는 꽤나 실패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니 이곳 가정은 가장 어렵지만 또한 그것을 잘 해내면 가장 복된 공간이 되기도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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