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교회에 대한 20가지 질문과 답변
1. 대면예배와 온라인 예배의 입장을 고수하는 근본 배경은 무엇인가?
대면 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은, 예배의 가치를 삶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이들은 그 어떠한 다른 가치들(예를 들어 이웃사랑)을 인정하지만 그보다 주일예배를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전혀 타협해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세상의 그 어떠한 가치, 이념보다도 주일예배를 공동으로 함께 드려야 한다는 가치를 최상으로 여기고 믿는 이들이다. 그래서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주일예배를 대면으로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온라인 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은, 주일예배를 함께 공동으로 드려야 한다는 가치를 최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이웃사랑이라는 가치가 더 높을 수 있고 예배에 대한 인식이 좀 더 광범위하여 주일예배만이 최상의 예배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대면 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은 주일예배를 공동으로 함께 드리는 것이 최상의 가치이므로, 이들에게 있어서는 온라인 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이 배도자처럼 충분히 느껴질 수 있다.
즉, 대면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은 온라인 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을 배도자처럼 여기고(왜냐하면 주일 공동예배만이 우리 인생의 최상의 가치이므로) 온라인 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면 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이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어떠한 한 가지 가치만이 옳다고 여기는 배타적인 집단으로 여긴다.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의 핵심이 다르므로, 사실상 이 둘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와 토론도 큰 의미가 없다. 의미 있는 토론을 위해서는 사실 주일공동예배의 가치가 우리가 살면서 지켜야 하는 최고, 최선의 가치인가?라는 역사적이고 신학적이면서 실제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2. 공예배는 하나님을 위한것인가? 사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둘 모두를 위한 것인가?
일반적으로 공예배는 하나님을 위한것이다. 라고 사람들은 인식한다. 예배라는 단어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깔려있다. 공예배의 특징은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에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분명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지만, 그렇게 드려진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 역시 큰 유익을 얻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즉, 공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만 그 예배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도 유익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공예배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때, 공예배는 더 이상 공예배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공예배가 하나님을 위한 목적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목적으로 전락했을 때 발생한다. 이러한 때는 공예배는 더 이상 공예배로써의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태에 있는 공예배에 대해서는 사실 논의할 가치가 없다.
논의해야하는 공예배는 여전히 이 공예배에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대상이 하나님인가에 있다. 이로써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현재 우리가 드리는 공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라는 근본질문에 우리는 다시 한번 겸손한 마음으로 질문해보고 스스로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3. 지금의 한국교회는 목회자 중심의 교회인가? 성도 중심의 교회인가?
목회자는 성도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성도가 없다면 목회자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성도 중심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성도를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건 목회자다.
4. 현재 한국교회가 성도 중심의 교회가 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의 한국교회 리더(목회자)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배출해냈다.
시작은 교회의 성도들이 중심으로 교회의 목회자들을 배출해 냈지만, 그 중간과정과 성장과정에서 너무 많은 권한과 책임을 목회자와 리더그룹에게 넘겨줬다.
그래서 지금은 깨어 있는 성도가 교회내에서 어떠한 중요한 역할을 하기 힘든 구조적인 한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권한과 책임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깨어있는 성도가 되기보다는, 그저 열심히 교회 봉사와 헌금을 열심히 하면 누구나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게 한국교회의 현 실정이다.
5. 설교에 대한 권한은 목사에게만 있는가? 성도도 설교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권한과 영역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사실상, 교회에서 하는 활동(?)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설교다. 오랜 설교를 통해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성도들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초석이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배워온 가치관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기 어렵다.
목사 역시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 완전한 가르침을 할 수 없고, 그 가르침에 한계가 있다. 조금의 부족함과 조금의 한계는 용납할 수 있지만 그 가르침에 심겨진 가치관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가치관과 반대가 될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가르침은 그 어떠한 치료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를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목사의 설교에 대한 구체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는 이러한 장치가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설교권에 대한 권한이 목사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명의 담임목사가 한 교회를 지도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오류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직 교회의 모습을 온전히 형성하기 전이었긴 하지만, 스데반집사가 설교하는 장면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목사가 아닌 성도가 설교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해준다고 해서 성경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을까? 우리는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6. 설교는 무엇인가? 신앙인가? 단순한 교리적 가르침인가?
설교는 기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최대한 정확한 해석을 한 뒤에, 그것을 현대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실제적인 교훈과 신앙의 성숙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주는 가르침이기도 하며, 예배의 중요한 요소이기도하다. 그러나 분명 설교는 예배의 영역에 속해있지만, 가르침의 영역이 크다.
이 가르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목사로 한정되어 있는데, 신학교육을 이수한 사람이 최소한의 설교의 권한이 주어진다. 신학교육은 잘못된 설교를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도 있고, 제대로 된 설교를 할 수 있는 최선의 장치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교회의 현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를 손봐야 하는 것인가? 신학교인가? 신학교 이후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인가?
설교는 분명 단순한 교리적 가르침은 아니다. 신앙이라고만 하기에도 부족함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선의 도움이 된다. 성도들은 설교를 들으면서 성숙해지고, 스스로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의 설교는 성도들이 스스로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설교에만 머무르도록 하고 있다.
7. 온라인 예배가 아닌 1인 예배, 가정예배로의 전환은 불가능한가?
청년사역연구소 페이스북 글들은 신선한 울림이 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바른 균형을 가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 전 올린 글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 내용 중 일부는 아래와 같다.
가정 예배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말도 현실을 모르는 자기중심적 생각입니다. 지금 한국사회 일인가구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일인가구 아니어도 온 가족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가정 예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못 합니다. (가정예배 하자 그러다 싸우는 가정도 있습니다 ㅠㅠ)
제대로 가정예배할 수 있는 가정은 전체 교인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칩니다. 실지로 가정예배를 통해서 긴 기간 신앙생활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 가정은 10분의 1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게 제 추측입니다.
[출처 : 청년사역연구소 페이스북]
청년사역연구소에서 파악하기로는 가정예배를 할 수 있는 가정이 전체교인의 절반에 못 미치고 실제로 가정예배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가정이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가정예배, 1인 예배를 할 수 없는 이유인가 묻고 싶다.
대내외적으로 선교 1위 한국교회를 자랑하고 있는데, 그 실상은 가정예배조차 드릴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 참으로 참담하다. 1인이니 예배를 드리거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건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수준 아닌가?
그럼 이렇게까지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 수준을 떨어트린 원인이 무엇인가?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교회 일중심으로 성도들을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이 피해를 지금 한국교회는 모든 가정들, 모든 1인들이 겪고 있고 결국 이 문제가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임을 우리는 자각하고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일중심의 사역들을 대부분 내려놓고, 가정예배를 회복시키고 1인이 스스로 신앙을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영적인 양분들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함께 모이면 신나고, 혼자 있으면 힘을 잃는 게 어떻게 그리스도인인가?
혼자 있으면 신나고, 함께 있으면 더욱 신나는 게 그리스도인 아닌가?
8. 불가능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도 여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한국교회 성도들의 수준을 오해하는 거다.
의외로 한국 성도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그리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 가정예배도 처음에는 싸울 수 있지만 하다 보면 는다. 처음부터 설교를 잘했던 목사님이 있던가? 하다 보니 잘하던 거 아닌가? 가정예배도 똑같고 1인 예배도 똑같다. 처음부터 잘할 순 없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다면, 우린 이러한 1인 예배, 가정예배에 있어서도 새로운 지경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불가능하지 않다. 하면 된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목사님들과 지도자들은 이러한 일을 격려해야지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코로나가 1년이 아닌 3년이 된다고 가정해본다면(그러길 원치 않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안이 더욱더 성도들을 위한 일 아닌가?
온라인 예배의 한계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비대면 예배가 필요하지만, 그 대안이 아닌 다시금 초대교회의 예배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면, 놓치지 말자!
9. 한국교회는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달려왔는가?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 달려왔는가?
한국교회는 개인의 성장보다는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달려왔다. 이 사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 교회가 그동안 달려왔던 것들을 내려놓을 때가 아닐까?
10. 교회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인데, 분명한 건 교회가 건물은 아니며 단순한 사교집단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형태의 모습이 우리 교회 가운데 있다면 그런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면 점점 교회다워지지 않을까?
이전에 쓴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11. 교회 개혁이 필요한가?
필요하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설명해야 한다면,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너무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핍박과는 차이가 큰데 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으로 인한 핍박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죄악으로 인한 비난이기 때문이다.
이러 한때는 개혁이 필요한 시기이다.
12. 교회 개혁을 위해서 가장 급진적인 방법을 사용해도 되는가?
개혁은 원래 급직적인 방법을 통해서 항상 실천되어 왔다.
13. 한국교회는 자본주의 위에서 성장했는가? 자본주의와 별개로 성장했는가?
한국교회는 자본주의 위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일부 한국교회들은 자본주의와 별개로 내적인 성장을 이룬 교회들이 있다.
실상은 그러한 교회들 덕에 외적으로 성장해 보이는 한국교회들이 한국에 넘쳐나는 게 현실 아닌가?
14. 한국교회가 성장한 게 사실인가?
성장한 건 사실이다.
외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내적으로는 성장한 교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은 내적으로 공허하고 부실하다.
15. 교회의 지도자들 스스로 개혁될 수 없다면, 성도가 그 개혁을 일으킬 수 있는가?
가장 좋은 건 교회의 지도자들이 개혁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그 시기를 놓친 지 오래된 것 아닐까?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 많은 것들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손에 쥔 것을 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그 손에 쥔것을 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게 교회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면 말이다.
16. 개혁을 위해서 기간을 정해놓고 한국의 모든 성도들이 교회 출석을 거부하고 모든 헌금을 교회가 아닌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는 극단적인 처방이 한국교회에 필요한가?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하고도 빠른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실천 가능성이 적다.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보니,
힘 있는 교회들이 모인 헌금을 교회 재정으로는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이번에 코로나 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이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나눠준다면 그들이 조금은 교회에 대한 증오와 같은 마음을 누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미안하다'라는 말은 공허한 메시지일 뿐이다.
가정이 무너지고
일터를 잃고
사업장을 문 닫아야 하는 시점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삶이 막막한 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오히려 그들에게 더 증오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라고 했다.
그 시절 교회는 은과 금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존재했다.
지금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없고 은과 금이 넘쳐난다.
그러니 우리에게 넘쳐나는 은과 금을 그들에게 조금 주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교회는 은과 금을 주위로 다 흘려버리고, 다시금 그리스도의 이름만 존재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시기다. 지금 그 시기를 앞당기기에 너무 좋지 않은가?
어차피 한국교회 가난하게 시작했는데, 다시금 가난해지는 게 뭐가 그렇게 두려운가?
가난해지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기로다.
돈이냐
예수 그리스도냐
17. 16번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그 교회 안에서 이미 교회 성도들도 상당히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문제는 목회자들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그 근본 이유가 있다.
교회 안에서 알게 모르게 기생하는 수많은 기생충 같은 이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 아닌가?
교회에서 우리들의 마음의 안식처를 얻고,
교회에서 우리들의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교회에서 우리들만의 천국을 만들고,
교회에서 우리들 말을 잘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을 친구로 삼고,
교회에서 우리들을 칭찬해주는 달콤한 사탕발림 말들을 여전히 붙들고 있는 우리들 말이다.
18. 내가 속하고 있지 않은 교회는 쉽게 비판하고 내가 속한 교회는 지지하는 게 참된 그리스도인의 행동양식인가?
우린 어느 때부터 스스로를 비판하는 모습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다른 교회 속에 있는 모습이 우리 교회에도 여전히 있는 것을 왜 잘 알지 못하는가?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하고 우겨도 세상은 우리들의 모습을 정확하고 적나라하게 안다.
그저 우리만 아니라고 애써 부인하며 스스로를 속일 뿐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세상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자.
19. 목회자를 쉽게 비판하지만, 그 목회자를 양성한 나 스스로는 왜 비판하지 못하는가?
목회자 역시 어떻게 보면 피해자일 수 있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유혹은 성도들의 반응인데, 특별히 설교에 대한 유혹 중 가장 큰 유혹이 성도들의 반응이다.
성경대로 설교하면 성도들은 떠나가고, 성경에서 조금 벗어나면 성도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회자들의 설교가 지금과 같은 수준이 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을 계속 목회자들에게 요구했고,
그 요구에 목회자들은 그저 순진하게 수용했을 뿐이다.
외식이 맛있지만, 외식만 먹고살면 영양에 반드시 불균형이 온다.
조금 맛은 떨어지고 우리를 자극하진 않더라도 집에서 맛이 아닌 영양을 고려한 식단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계속 먹어야 한다.
우린 이 일에 실패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영양을 잘 고려한 설교를 우리는 목회자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비록 성도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말이다.
20. 코로나19가 길어진다고 가정하고, 우리는 기존 교회에서 생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시금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갈 마음이 있는가?
각자 한번 진지하게 질문해보자.
정말 나는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갈 마음이 있는가?
신앙의 기본은 그럼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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