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로드교회 26년 1월 25일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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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
누가복음 11장 37절–54절
오늘 함께 나누는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11장 37절에서 5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113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점심 초청을 받으시면서 시작됩니다.
본문 봉독 (요약 정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점심 자리에 초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고 식사 자리에 앉으시자, 바리새인은 이를 이상하게 여깁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의 위선과 내면의 부패를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모습을 지적하시며, 외적 정결보다 내적 정결과 구제를 강조하십니다. 또한 십일조 규정은 철저히 지키면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버린 행태를 고발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명예와 사람들의 인정을 즐기며, 보이지 않는 무덤과 같이 사람들을 부지중에 부정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 율법 교사들에 대해서도,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고 자신들은 지키지 않으며, 선지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면하려 한다고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그들이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도 자신들은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들마저 막고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노려보며 말로 책잡을 기회를 엿봅니다.
지난 말씀의 흐름
지난주 말씀에서 예수님은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며, 이것만이 우리를 진리로 이끌고 회복시키는 표적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빛으로 표현하셨지만, 사람들은 그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빛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눈—곧 오만과 완고함—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왜 빛 되신 예수님을 보려 하지 않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바리새인의 초청과 긴장된 식사 자리
본문은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점심 식사에 초대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일반적으로 식사 초청은 친교와 관계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관계를 고려할 때, 화해나 배움의 계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됩니다.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신 것을 바리새인이 문제 삼자, 예수님은 즉각적으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드러내십니다.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에 대한 이해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구별된 자’, ‘참된 이스라엘 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상류 귀족 계층은 아니었지만, 민중 출신으로 대중의 지지를 많이 받았으며 율법학자들과 밀접하게 결합된 집단이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는 서로 다른 그룹이었지만, 공생 관계 속에서 자주 모였고 종교적 영향력을 확대해 갔습니다. 특히 십일조 규정과 정결 규정을 강조하며 유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헤롯 시대 바리새인의 수는 약 6천 명으로, 당시 예루살렘 인구 규모를 고려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숫자였습니다.
예수님의 강한 책망의 이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 자체를 지키려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규범을 통해 공동체와 조직의 유지, 그리고 권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 씻는 규정 역시 본래 모세 율법에 있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만들어진 인위적인 전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고의로 지키지 않으심으로써, 사람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군림하는 문제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외적 정결과 내적 부패
예수님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외적 종교 행위에 집착하면서도 내적 정결과 회개에는 전혀 관심 없는 위선을 고발하신 말씀입니다.
41절에서 예수님은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고 말씀하시며,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물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이는 삶 전체의 정결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십일조와 하나님의 공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명시되지 않은 박하, 운향, 채소에까지 십일조를 요구하며 백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웠습니다. 그 결과 당시 백성들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세금과 종교적 의무로 바쳐야 했고, 삶은 매우 팍팍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일조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시면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함께 행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형식적 율법 준수는 중요하지만,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형식주의와 명예욕에 대한 경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인사받는 것을 즐긴다고 책망하십니다. 명예와 명예욕은 다릅니다. 신자는 명예롭게 살아야 하지만,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에 집착하는 명예욕은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을 ‘평토장한 무덤’에 비유하시며,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을 부지중에 부정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선언하십니다.
율법 교사들에 대한 저주
율법 교사들은 바리새인에 대한 책망을 듣고 모욕감을 느끼며 반발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향해 더 강한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그들은 지기 어려운 율법과 장로들의 전통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면서도 자신들은 지키지 않았고,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그들을 죽인 조상들의 길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아벨부터 사가랴까지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에 대한 책임이 이 세대에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지식의 열쇠를 막아선 자들
율법 교사들은 성경 해석의 권한을 독점하면서도, 진리로 사람들을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들마저 막는 행태를 예수님은 ‘지식의 열쇠를 빼앗은 죄’로 규정하십니다.
오늘을 향한 경고와 적용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만이 아니라, 그들을 따르던 당시 이스라엘 사회 전체를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신앙이 진리보다 조직과 형식, 편의와 실용성으로 대체될 때, 우리는 쉽게 바리새적 위선에 빠지게 됩니다. 목사는 소명에 생명을 걸어야 하고, 성도는 진리를 따르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엄중한 책망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볼 때, 이 말씀은 저주가 아니라 회개의 기회가 됩니다.
맺는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진리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귀히 여기며, 진리를 사욕과 자기 증명의 수단으로 삼지 않게 하옵소서.
바리새적 위선과 율법사적 교만을 피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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