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로드교회

누가복음 10:38–42 강해 (더로드교회 12/21)

by Danny_Kim 2025. 12. 21.

누가복음 10:38–42 강해 (더로드교회 12/21)

 

설교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bBTfhPhmvGk

 

 

1. 본문 봉독 (누가복음 10:38–42)

오늘 함께 읽을 말씀은 누가복음 10장 38절부터 42절까지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교독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38절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절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절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절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멘.


2. “봉사가 중요할까, 말씀이 중요할까?”라는 질문

오늘 본문은 교회에서 종종 논쟁이 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교회 봉사가 중요할까요, 아니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할까요?

(아이들 반응)

  • “하나님 말씀 듣고 배우는 거요.”
  • “둘 다요.”

네, 둘 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단순히 “봉사 vs 말씀”의 비교로 끝낼 수 없는 내용입니다. 본문이 일어난 정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3. 예수님이 가시는 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

지금 예수님은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왜 올라가실까요?

(아이들 반응)

  • “죽으려고요.”

맞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보통 길이 아닙니다.


4. 베다니와 마르다의 영접

38절을 봅시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예수님이 들어가신 마을은 베다니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매우 가깝습니다(대략 몇 km 거리).
유대인의 3대 절기에는 예루살렘에 사람이 몰립니다.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까지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모이니, 예루살렘의 숙박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 마을들(촌락)이 이들을 수용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베다니도 그런 마을 중 하나였습니다.

그 베다니에서 마르다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합니다. 예수님 혼자만 오신 것이 아니라 일행도 함께였을 것입니다. 손님을 집으로 모시고 극진히 대접하는 것은 당시 풍습에서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마르다가 손님 접대를 위해 분주해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5. 이상한 장면: 마리아가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다

그런데 누가는 한 장면을 ‘의아하게’ 기록합니다.

39절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보통이라면 동생이 언니를 도와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언니를 돕지 않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가 불평합니다.

40절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의 요청은 당연합니다. 손님을 초대한 집에서 가족이 함께 대접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마르다 기대와 다릅니다.


6. 예수님의 대답: “오직 한 가지가 필요하다”

41–42절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이 대답 때문에 “봉사보다 말씀”이라는 결론으로 쉽게 가곤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단순히 “봉사 vs 말씀”의 논쟁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7. “주의 발치에 앉다”의 의미: 제자가 되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주의 발치에 앉아”**입니다.
당시 문화에서 누군가의 발치에 앉는다는 것은 그의 문하생, 그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마리아는 단순히 편한 자리(‘일 안 하고 쉬는 자리’)를 택한 것이 아니라 제자의 자리를 택한 것입니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당시 랍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남성만 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은 당시 통념으로 보면 꽤 파격적인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는 남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인들도 많았습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언니 돕는 게 귀찮아서 쉬운 편을 택했다거나, “요령 부린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할 정도의 헌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손님 접대를 위해 언니를 완전히 외면할 사람도 아닐 것입니다.


8. 42절의 표현 논쟁: “몇 가지만”이냐 “한 가지”냐

본문 해석에서 논란이 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42절에 “몇 가지만 하든지”라는 표현이 있는 사본이 있고, 없는 사본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원본이 남아 있지 않고 사본들이 전해 내려오는데, 사본의 차이 때문에 번역본마다 표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몇 가지만 하든지”**라는 표현은 사본 증거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해석의 중심에 두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대다수 사본의 흐름을 따라 정리하면 예수님의 대답은 이런 의미가 됩니다.

“마르다야, 네가 우리를 접대하느라 마음이 너무 분주하구나.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네 접대가 아니다.
오직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는데 마리아는 그것을 알아보는구나.
마리아는 그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즉 “요리를 몇 가지로 줄여라” 같은 얘기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9. 그 ‘한 가지’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길을 이해하는 것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마리아는 그 중요한 한 가지를 알아보았는데, 마르다는 왜 못 알아보았을까요?

여기서 다시 본문 첫 문장을 봅시다.

“그들이 길 갈 때에…”

누가는 굳이 이 표현을 넣었습니다.
이 길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죽어야 하는 순간을 향해 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체포되기 전 겟세마네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실 만큼 이 길의 의미가 절박하고 무겁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해야 할 일을 마감하러 가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동물이 사람 대신 죽었지만 그 방식으로는 죄가 영원히 속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재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로 그 속죄의 효력을 영원히 확증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의미를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메시아의 사역을 정확히 가르쳐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정황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택한 “좋은 편”, “오직 한 가지”는 결국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전하려는 메시아의 사역,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청종하고 배우는 것.


10. 때를 따라 순종하는 신앙

여기서 중요한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때가 아닌데 하면 옳은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때를 따라 일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그 일행을 대접하는 일이 왜 잘못이겠습니까?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정황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즐겁게 식사하고 교제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행을 극진히 대접할 때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교회 일을 봉사할 때는 열심히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분명히 배워야 할 때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복음의 내용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처럼 말입니다.


11. 한국 교회를 향한 적용: 지금은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할 때

저는 한국 교회가 지금 “사람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바로 배워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며 그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길입니다.

마르다는 선한 동기로 예수님 일행을 대접하려 했지만, 예수님의 입장과 생각, 예수님의 마음, 뜻, 의도는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섬기고 싶은 대로, 내 열심으로 분주하게 움직인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자기만족적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신앙을 내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이 하시려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미 성취하신 구원의 풍성한 내용을 배워야 합니다. 그 풍성한 구원의 내용으로 우리의 허기진 영적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풍성함으로 우리 현실을 살아내는 신앙의 현실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라는 조직에만 매이지 말고, 교회에서 얻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과 생명을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로 현실을 살아내야 할 때입니다.
말씀과 교회가 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12. 결론: 마리아처럼 “좋은 편”을 택하라

마리아처럼, 우리에게 이미 성취하셔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생명을 맛보고, 그 풍요로움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배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기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