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어제의 하루가 오늘의 하루에게, 그리고 오늘의 하루가 내일의 하루에게 지식을 전한다.
어제의 밤이 오늘의 밤에게, 오늘의 밤이 내일의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
그들이 전하는 지식은 언어도 아니며 소리도 아니지만 분명히 진리를 그대로 전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지혜가 숨겨 있으니 이는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며, 이 시편의 구절은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었는데 시편 기자는 우리의 부족한 인식을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자가 없도다
우리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며 누가 더 잘났는지를 경쟁한다.
그것이 지식이든, 부든, 명예든, 존경이든 그 어떠함과 상관없이 인간의 본성이 그것을 추구한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는 이를 찾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렇게 서로 잘났다고 비교하는 우리 인간들은 매일 아침 변함없이 뜨는 저 태양 앞에서 전혀 힘을 못쓰는 연약하고도 부족한 존재임을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
깨닫더라도 금세 잊어버리는 인간은 분명 그 지혜가 부족하여 쉽게 교만에 빠지는 듯하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영혼을 소성시키며 : 소성시키며란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단어인데, 되살아날 소에 깨어날 성이 합쳐진 단어로 큰 병을 치른 뒤 다시 회복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 원어는 shuwb인데 return, turn back, restore, recover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해석하면, 죽어있던 영혼 혹은 영혼이 거의 피폐해져서 이제는 회복이 불가능한 시점에서 다시금 영혼을 살리거나 영혼을 온전히 회복시킨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의 영혼이 실제로 피폐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그 피폐해진 영혼을 상처까지 말끔히 깨끗이 치료할 수 있는 완전한 치료제임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그 상처의 흔적은 남지만 더 이상 깊은 상처가 앞으로의 삶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그만큼 여호와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가장 중요한 치료제이자 생명줄과도 같다. 이미 오랜 역사 가운데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를 증명하였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8절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준다. 우리의 마음은 의외로 물질적인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원했다고 하여서 만족되지 않는다. 순간적인 만족은 있으나 금방 그 마음이 식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훈은 정직하므로 실제적인 기쁨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순결함이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히 밝혀준다. 그 밝혀진 눈은 실제 우리의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힘을 준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이 땅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경외함이 영원까지 이어진다. 즉, 우리의 이 땅에서의 천국의 삶뿐만 아니라 부활 후 천국에서의 삶도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태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실제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기쁨과 안정감을 한없이 느끼고 경험한다. 그 경 외함 속에서 듣고 순종하며 기쁨으로 그 말씀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하고 달수밖에 없다. 이건 경험해본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나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모든 인간은 허물 속에 헤메고 있다.
그리스도인 역시 이 허물을 완전히 벗을 수 없다.
그 어떠한 유명한 그리스도인이나 영향력 있는 목사라고 하더라도 이 허물속에 갇혀있다.
우리는 부분만 알고 전체를 알지 못한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은 착각에 쉽게 빠지지만 진정한 진리는 우리는 여전히 아주 일부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그 전체를 알 수 있는 자들은 이 땅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지식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반대편에 있는 자들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은 역시 동일하게 어리석은 자들이 하는 행동일 수 있다.
숨은 허물을 깨달을 자는 실제로 적으며, 그 숨은 허물을 깨달은 자도 역시 더 많은 숨은 허물이 있다는 사실까지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연약한 상태의 경계에 두신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사람들이 좇고 경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누구나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싶은 게 사람이 가진 연약함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조금이라도 깨닫는 자는 복된 자들이다.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부족한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입술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묵상한 걸 나누며, 서로를 위로해주고 서로에게 칭찬을 한다. 때로는 잘못된 것을 비판하기도 하며 모든 사람이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서로서로 도와준다. 부족한 입술과 부족한 마음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입술과 마음을 통해서 경배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래서 잠잠하기만 해서는 안되고 부족하고 실수가 많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입술과 마음과 행동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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