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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1절~54절

by ezrabible 2015. 8. 26.

요한복음 4장 1~54절


사마리아 여자와 말씀하시다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A.     요한보다 예수님의 제자가 많아짐을 바리새인이 들었다는 얘기는 결국 이제 바리새인들의 관심이 요한이 아닌 예수님께 있을 것임을 아시게 된 것이다.바리새인들이 계속적으로 예수님의 위치에 대해서 집요하게 추궁할 것에 대해서 아시게 되셨다.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A.     실상은 예수님이 세례를 베푼 것이 아니였다.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푼 것이다.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A.     예수님은 다시금 갈릴리로 발걸음을 옮기신다.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A.     갈릴리로 곧장 가시지 아니하시고 사마리아를 중간에 거쳐 갈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성령께서 사마리아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을 주셨을 것이다.사마리아에 무슨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우리 인생에도 가야 할 목적지가 있지만 중간에 거쳐야 할 많은 관문들에서 주님이 무슨일을 우리에게 주셨을까?라는 기대감으로 그러한 중간의 일들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우리는 마지막 골대만을 향해 달려갈려는 습성이 있지만 그 중간 과정과정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숨어있다.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A.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이 상관하지 않는 지역인데 그 사마리아에 수가라는 동네는 역사적으로 야곱이 요셉에게 땅을 준 놀라운 곳이었다.무슨일을 계기로 이러한 땅이 상종하지 않는 지역으로 변하였을까?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A.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이 피곤하셔서 그대로 앉으셨다.그 피곤함이 얼마나 크셨으면 쓰러지듯 앉는 듯한 표현이 기록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계셨기에 피곤하셨다.예수님은 피곤하도록 자신의 일에 충성하셨다.나 또한 주어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므로 피곤함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나는 주님앞에서 일하는 자인데,그분의 일을 열심히 하므로 피곤하므로 쉬는 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A.     사마리아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물을 길러 왔으며 그녀에게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 하시면서 대화를 시작하신다.예수님은 대화를 시작하실 때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필요를 구하면서 시작 하시는 걸 볼 수 있다.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A.     예수님과 제자들의 필요가 어떻게 채워졌을까?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A.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질문에 놀랐다.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기 때문이다.사마리아인과는 유대인은 상종하지 않는 일을 예수님이 깬 것이다.우리의 습관 행동 유전이 성경과 다를 때 우리는 그것을 깰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A.     하나님의 선물과 생수를 받기 이전에 그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인지 분명히 안다면 우리에게 생수의 하나님의 선물은 이미 보장 된 것이다.나의 목마름 이것은 예수님을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닐까?나의 갈증 필요 모든 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데,나는 다른 것을 찾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A.     물을 기르기 위한 방법이 채워지지 않는 상황이었다.그릇도 없고 물을 얻을 려고 해도 너무 깊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 사마리아여인의 질문이었다.분명 그곳에 물은 있었다.그렇다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인데,인간적인 생각으로 그릇이 없음과 물이 깊은 곳에 있음이 사마리아 여인으로 하여금 물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우리에게 주님은 분명히 옆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시며 항상 우리를 도와주신다.그러나 우리의 환경이 우리의 상태가 그 분명한 사실을 가로 막고 우리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인지해야 할 사항은 물이 있다는 것이다.우리 곁에 주님이 계신다는 것이다.나는 그분께 나의 필요를 아뢰고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께로부터 목마름을 해결받으면 되는 것이다.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A.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우리의 목마름을 채울 수 없다.그 순간에 채움은 이루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목마름이 찾아오고 그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인생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그러나 그 새로움 뒤에는 다시금 허전함과 목마름이 생긴다.결국 우리의 목마름의 해결은 주님뿐이다.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A.     하나님이 주시는 물만이 영원토록 목마르지 아니한다.그 주시는 물의 특징을 보면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하였다.하나님 안에서 영원토록 계속적으로 솟아나오는 샘물이다.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 예수님으로부터 계속적인 샘물이 솟아 나온다.우리는 이 샘물을 마셔야 갈증이 더 이상 없다.우리의 매일 매 순간 이 샘물을 마시고 있는지를 점검해봐야 한다.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생수의 말씀으로 우리의 목마름을 채우고 있는가?아니면 세상의 것들로 우리의 목마름을 채우려고 발버둥 치는가?세상것들은 계속 목마르게 할 뿐이다.영원토록 목마르지 않는 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안에 있는 생명수 밖에는 없다.나는 오늘도 그분의 말씀으로 나의 목마름을 채우고 있는가?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A.     우리 모두는 갈증 가운데 산다.물을 매일 마시지만 계속해서 갈증이 난다.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만 그 모든 것도 결국에는 없어져 버린다.또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그러한 깨달음이 여자에게도 있었고 그 여자는 다시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원하였다.원하는 자에게 주님이 주신다.그는 진정한 기쁨을 원하였고,그 기쁨을 주님은 주신다.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A.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을 달라고 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남편을 불러오라는 다른 말씀을 하신다.그녀는 자신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남편에게 의지를 했던 모습을 볼 수 있다.우리는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대체물이 무엇인가?주님은 그것을 먼저 다루신다.우리에게 대체물이 먼저 다루어지지 않는 다면 영원한 생수는 없다.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A.     여자에게 남편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는 실제 그녀의 남편은 아니었다.우리가 대체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실제 우리의 원함을 채워줄 수 없다.그것을 예수님은 아시고 그 여자에게 남편이 없다라고 하신다.너의 대체물이 무엇인지 가져오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그 대체물로 너의 원함을 채울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A.     그녀의 과거를 모두 알고 계셨다.그리고 지금의 상황도 정확히 알고 계셨다.우리가 계속적으로 과거에 대체물을 찾고 다녔던 걸 주님은 아시고 또한 지금도 다른 대체물로 주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걸 주님은 아시다.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건 그 대체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신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A.     사마리아 여인은 이제야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그러나 그녀에게 아직까지 예수님은 선지자 정도이지 그의 구원자나 그의 목마름을 완전히 해결 할 수 있는 자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은것일까?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A.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를 중요시 여겼다.그리고 자신의 고향에서 계속적인 예배를 드려왔다.그래서 실상 자신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주제에서 예배로 내용이 바뀐다.우리의 목마름은 실상 예배를 통해서 채워지는 것 아닐까?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완전한 만족과 완전한 생수를 맛보게 된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A.     예배는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그러한 예배의 때가 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예배의 대상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께 우리가 예배할 때가 곧 온다고 하셨다.그것은 지금이다.우리는 예배의 때에 살고 있다.예루살렘이 아닌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로 삶을 시작하는가?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A.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했지만,우리는 이제 아는 것을 예배한다.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시며 예배의 내용은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를 찬양하고 높여드리는 것이다.하나님께서 행하신 십자가의 사역은 얼마나 인생에게 놀랍고 인생이 영원토록 찬양하고 높여드려야 할 예배의 대상인가?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높임을 받으시고 영원토록 찬양 받으시는 것이 당연하다.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 드리는 삶으로 초청 받았다.단순히 예배의 행위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구석구석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고 십자가의 능력을 모든 것에서 찬양 드리는 삶이 우리의 삶이다.그러한 삶을 오늘 나는 살아가는가?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A.     하나님께 진실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성령과 진리의 말씀에 근거를 둔 예배이다.성령께서 알려주시고 말씀에 증거된 그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그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역을 예배하는 것이다.이렇게 말씀을 통해서 찾고 알게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찾으신다.이러한 자들을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신다.가장 인생에게 먼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다.오늘 나는 어떠한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서 배웠으며 그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 드렸는가?어떻게 그 하나님을 나의 삶 구석구석에 적용하여 하나님을 높여 드릴 것인가?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A.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영으로 예배하는 것이다.다른 육신의 것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높여 드리거나 기억할 순 없다.또한 그 영으로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한다.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A.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리스도를 찾는 이에게 하나님은 그를 만나 주신다.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의 비밀이며 우리 인생의 모든 궁금점의 해결인 것을 사마리아 여인은 알고 있었다.그는 비록 남편을 여러명 거쳐 가는 세상으로서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위치였지만,영적으로는 갈급함과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하나님이 만나주실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우리도 겉으로 보기에 성숙할지라도 그 중심가운데 영적인 갈급함과 심령이 가난함이 없다면 버려질 수 있는 인생인 것이다.교만치 않고 겸손히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도를 찾는 심정이 우리 세대에 필요하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A.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기다려왔었다.결국 기다림의 끝에 그리스도를 만났다.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는 이 사마리아 여인도 그리스도를 기다려 왔었다.그런데 그는 유대인으로 오실 메시야가 자신과 상종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기다려 왔다.그녀는 무슨 믿음으로 이러한 기다림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이 땅에 오신다.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가?이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우리인생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그 분을 기다리고 있는가?이제는 육체를 벗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의 몸을 입을 날을 실제로 기다리고 있는가?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A.     제자들은 사마리아여인과 말씀하는 걸 목격하고 분명 이상히 생각하였으나 묻지 않았다. 그들이 묻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 겸손함을 가지고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많은 순간 자신의 무지함이 드러나고자 묻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로 겸손한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자이며, 아는 자에게 우리가 모르는 바를 알려주고 겸손히 알고자 하는 자세를 나타내야 한다.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A.     여기서 여자의 행동을 보자.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 두었다. 그녀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드디어 찾게 된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있었던 물동이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다. 그녀는 진정 영원한 생수의 근원되시는 주님을 만난 것이다. 그 만난 기쁨에 찬 그녀의 첫 행동은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전도하는 것이었다.
B.     우리의 인생에서 물동이를 버린적이 있는가? 무작정 버리는 물동이가 좋은것인가? 물론 그러한 것도 필요하지만, 순서적으로 보았을때는 생수의 근원되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 먼저이다. 그런 다음 우리가 가진 것은 자연스럽게 놓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의 반응은 우리가 만난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전파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단계에 와있는가?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A.     그녀의 모든 행동을 알고 있는 그분은 하나님 이외에는 없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은 오직 전지하신 하나님뿐이시다. 그분을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B.     그분은 소개로 끝나지 않는다. 와서 보라는 이 간구속에 우리의 행동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그분을 만나고자 할 때 만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행동을 게으르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분을 만나고자 할 때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A.     그들은 사마리아 여인의 진심을 들었다. 그리고 그 진실된 이야기를 믿었다. 그러므로 그 동네에 머물지 않고 거기서 직접 발을 옮겨 나와서 우물 근처에 계신 예수님께로 직접 나아왔다.
B.     우리는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냥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말씀을 전하는 자의 진실성이 결여되거나 또는 듣는자의 믿음이 부족해서 일 것이다. 전하는자가 진실되게 전하고 듣는자가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는다면 그 말씀은 힘을 발휘하여 그들의 발을 움직여 직접 본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말씀의 위력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인도한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거나 들을 때 이와 같은 자세로 전하거나 듣는가?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A.     제자들이 음식을 준비해왔다. 예수님께 자신들이 어렵게 구한 음식을 먼저 대접하는 모습을 보인다.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A.     예수님은 분명 배가 고프셨을텐데, 제자들이 준비해서 온 양식을 거절했다. 거기에는 분명 영적인 교훈을 주시고자 하시는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직까지 제자들은 알지 못했던 양식이었다. 주님은 이 양식을 그들에게 주고 가르키고자 하신다.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A.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분명 제자들이 가져다 준 것이 아닌 또 다른 양식이 있음을 알려주셨는데, 제자들은 오직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줄 양식만을 생각했다.
B.     우리는 하늘양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은 이 땅의 양식을 좇아간다. 우리에게는 이 둘 모두 필요하지만, 많은 이들은 하늘의 양식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 하늘의 양식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우리가 이전에 몰랐던 하늘 양식 그러나 이제는 알고 나서 너무나 기쁜 하늘양식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매순간 필요한 양식이다. 육신은 좀 굶어도 된다 그러나 영은 날로 날로 건강해지도록 영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한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A.     하나님의 양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그리고 그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향하기 이전에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오신것이다. 이곳에서 행하실 하나님의 사역을 예수님은 행하시면서 자신의 영의 양식을 공급받았다.
B.     우리에게 사역은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다시금 맛보게 되는 놀라운 힘이 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양식이 된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이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양식이 된다.
C.     하나님의 사역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할 점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적당히 하거나 자신이 감당할 만큼 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사역의 목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역에 임하는 자세는 하나님의 뜻인가 나의 뜻인가를 살펴보고 그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온전히 이루기까지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충성스럽게 행해야 한다.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A.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이제는 추수할 때다. 추수하는 것은 참으로 기쁜 것이고 약간의 수고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수고도 아닌 것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영혼들의 밭을 건지는 작업에 우리 모두 열심을 내는가?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A.     우리에게는 영혼을 거두는 일을 맡기셨다. 씨는 주님이 뿌리셨으며 그 거두는 것의 기쁨을 우리와 함께 누리기 위해서 친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맡기셨다. 마지막에 누리는 기쁨이 가장 크지 않은가? 하나님은 친히 우리들에게 가장 귀하고 즐거운 일을 맡기시길 기뻐하셨다.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A.     심는이가 있고 거두는 이가 있다. 그 모든 것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A.     노력한자와 노력한 것에 참여한자 모두가 기쁨을 함께 누린다. 우리는 노력에 참여한 자들이다. 작은 수고로 큰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 자들이다. 우리의 헌신과 노력이 크다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우리의 수고와 헌신은 작은 참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참여의 결과와 기쁨은 엄청나다. 그런데 누가 이런 헌신에 참여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가? 진리를 모르는 자들은 그렇게 헛된 것에 인생을 낭비하지만 진리를 밝히 알게 된 자들은 작은 헌신과 참여로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 참된 것에 우리를 드리자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A.     그 여자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진실성이 있었다. 그의 증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예수님을 보지도 못하였으나 들은 말로써 그들은 믿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다. 한 사람에게 역사한 하나님이 그를 통해 그의 입으로 증언되는 말을 통해 여러 많은 이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
B.     나를 통해서 다른 한사람이 구원받는다면, 또 그가 그 진실성 있게 다른 이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전한다면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난다. 나에게 맡겨진 건 많은 영혼이 아니라 단 한명의 영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한명의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크며, 그 한명의 영혼속에 숨겨진 여러 줄기 같은 많은 영혼들의 가치가 얼마나 큰가?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A.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고 싶어하였다. 예수님을 초대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헌신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기를 원했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는 일정을 더 미루시고 이틀이나 그들에게 더 머무셨다. 예수님은 자신들을 초청하는 이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많은 시간을 그들에게 할애하신다.
B.     우리들이 예수님을 초청하지 않아서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구하고 찾으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걸 항상 기뻐하신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그건 위의 잘못인 것이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A.     예수님이 함께 계실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이들도 함께 초청된 것 같다. 그들에게도 복음의 빛이 비추어지고 그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삶에 많은 순간 초청하면 할수록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 우리 주변의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기 때문이고 예수님을 우리 삶에 초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더 중요한 예수님을 모시는 걸 거절하면서 살아가는가?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A.     그들의 믿음은 더욱 확증을 얻었다. 처음에는 말로 듣고 믿었다. 그들의 믿음은 진실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보고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 증거되는 복음을 다시금 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믿음은 더욱 굳세지고 더욱 확증을 얻게 되었다.
B.     우리 또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그리고 믿음에 있어서 더욱 더 예수님을 대면하고 그가 우리의 구주이시다는 사실을 친밀하게 알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우리의 믿음은 굳세지고 우리의 삶은 더욱 견고한 기초위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다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A.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 중요한 사람은 계속 함께 하지 않는다. 있을때 가장 필요한 것들 것 그분에게 얻고 또한 그분에게 드리자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A.     고향에서는 왜 높임을 받지 못할까?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어린 예수로 보고 있는걸까? 나는 내 주변의 사람을 여전히 어린 사람으로만 보는 경향은 없을까?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리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리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A.     인생들은 표적과 기사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 진정 예수님이 우리 영혼의 구원자의 필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래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A.     그는 예수님의 말을 믿었다. 그 믿음이 아들을 살렸을까? 아니면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보셨을까? 분명 그가 믿었다는 말씀 전에 예수님이 그의 아들이 살아있다라고 선포한다. 이것은 먼저 이루어진 사실이다. 그의 믿음과 상관없이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그가 믿든 믿지 않든 그의 아들은 살게 되었다.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A.     그는 실제 예수님을 언제 믿게 되었나? 그리고 그 믿음은 무엇에 기초하고 있었는가? 그는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진 시간과 역사된 사건을 실제로 비교하며 경험해보면서 더욱 그의 믿음이 확고해진다. 그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사건으로 인하여 그의 집안이 다 믿게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B.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 위에 우리의 믿음이 의미가 있게 된다. 그렇지 않은 믿음은 맹목적이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 우리가 믿고 있는 바가 말씀이 증언하는 바가 아니라면 차라리 안 믿는 사실이 낫다. 또한 그 믿음이 역사되는 걸 경험하게 될 때 그 믿음은 역사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깊어지고 다른이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A.     첫번째 표적은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었다. 두번째는 사람을 살린 사건이었다. 그것도 보지도 않고 말씀으로만 그렇게 하셨다. 이 두 사건이 의미하는바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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