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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1~30절 예수와 니고데모

by ezrabible 2015. 8. 26.
예수와 니고데모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A.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리새인의 이미지와 다른 한 사람이 등장한다.그는 바리새인이었고 또한 유대인의 지도자였다.그의 이름은 니고데모였는데,예수님께서 항상 바리새인을 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에 많은 구절로 그를 소개하고 있다.그가 어떤 사람이었길래 바리새인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이렇게 소개되고 있는가 주목해봐야 한다.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A.     그는 밤에 예수께 찾아왔다.그가 밤에 찾아온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일까?중요한 건 그는 스스로 예수께 찾아왔다는 것이다.다른 바리새인들과의 목적과 달리 그는 진실로 예수가 누구인가 궁금해서 찾아왔다.우리의 인생에서도 예수님을 직접 스스로 찾아가야만 한다.
B.     그는 랍비라고 예수님을 부른다.그에게 지금까지의 예수님은 선생이었다.그에게 무엇인가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생의 존재였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은 실제로 사람이 행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그는 바리새인이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성경을 알았으며 실제로 성경을 읽으며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자였던 것을 엿볼 수 있다.그리고 그에게는 다른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위치와 그러한 것을 크게 염두해 두지 않으면서 진리를 더욱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유대사회에 일어나는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그는 다른 바리새인들과는 다른 눈으로 살펴보았기 때문이다.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우리도 이와 같이 진리를 찾고자 하는 눈으로 현상을 봐야하지 않을까?단순히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닌 진실로 하니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염두해둔채 세상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살펴보아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A.     예수님의 대답은 참으로 놀라웠다.니고데모는 진실로 예수님에 대해서 몰랐고,단순히 진리를 찾고자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여 찾아왔으나,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어려운 답을 하신다.그것도 진실로라는 말을 두번 이나 하시면서 진지하게 말씀하신다.그 말씀은 사람이 거듭나야 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다.모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런 유대인중에 유대인인 니고데모에게너가 하나님의 나라를 볼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구약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던 다시 태어나야 하는 진리를 제시하실 수 있는 분은 진리되신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A.     여기에 니고데모의 순수성과 진진함이 얼마나 역역하게 드러나는가를 볼 수 있다.예수님께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새로운 진리를 제시하였을 때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니고데모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그는 그 진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방법을 간구한다.두 번째 모태라는 말을 사용하며 사람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니고데모의 입을 통해서 고백되고 있다.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우리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수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가 살펴보아야 한다.물론 그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하지만,그 이전에 우리의 자세는 니고데모와 같이 순수하게 진실되게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A.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같은 내용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거듭나야 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나야 된다고 알려준다.결국 하나님 나라를 볼려면,하나님 나라를 들어갈려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알려준다.그럼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어떤 것일까?니고데모는 이것이 참 궁금하였을 것이다.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A.     예수님은 다시 한 번 거듭남의 진리를 설명해준다.사람의 처음 태어남은 육으로 태어나는 것이지만,두번째 태어남은 영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설명한다.결국 거듭남은 육이 아닌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A.     거듭남에 대해서 설명을 마치시고 이와 같은 진리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니고데모에게 알려준다.거듭남의 진리를 니고데모에게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구약성경 어디에도 없었던 진리를 드러내 보이셨던 예수님께서 그 사실에 대해서 놀라워하지 말고 받아들일것을 요구하신다.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A.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으로 비유하시면서 소개하신다.그리고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어디로 가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알려주신다.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고 우리가 예측하기 또한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일까?분명 성령으로 난 사람은 성령에 의해서 자유롭게 그의 일을 행한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듯하다.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A.     진리를 예수님께서 제시하셨지만, 니고데모는 그것을 받아 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그러한 일이 어떻게 인생에게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아마 유대인들은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것일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A.     마땅히 알아야 될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선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예수님은 그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으셨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분을 알려주며 선생으로서 이것을 알아야 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그는 마땅히 자신이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그리고 그가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와 같은 진리를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을 알려준다.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A.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진리만을 얘기하시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시며,진리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였으나 그것을 받지 아니하는 그들의 영적인 교만함과 무지함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나타내신다.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옳으시고 완전하시다.다만 인생이 교만하고 무지하여 그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어려움이 생기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못하며 진리가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거짓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안타까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A.     예수님의 이 말씀을 주목해보자.이 거듭나는 이 일이 우리의 지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 진리가 하늘의 일이 아닌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우리에게는 거듭나는 일이 놀라운 하늘의 일인 것 같지만,그렇지 않다.이 거듭남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역사다 이 역사도 믿지 못하는 많은 무리들이 이땅에 존재한다.그들은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예수님을 참 알지 못한다.그러나 이 진리를 받아 들인 우리 거듭난 사람들은 이 땅의 일은 받아들였지만,하늘의 일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아닐까?분명 이 거듭남의 역사보다 더욱 놀라운 역사는 하늘의 일인 것이다.성경에 많이 감추어진 하늘의 보화들 상급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게 될 영원한 나라의 영원한 일들 그와 같은 일들을 우리가 믿지 못하여 성경에 많이 감추어진 것은 아닐까?우리의 눈을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주목하고 하늘에 두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그것을 진리로 말씀해주시더라도 니고데모와 같이 우리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침묵하시는 것은 아닐까?우리에게 하늘의 일을 믿고 받아들이고 쟁취할 그와 같은 믿음이 필요하고 그와 같은 믿음을 주님께 간구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A.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왔기에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분명히 우리에게 제시해 줄 수 있었다.우리가 예수님과 친밀해 지면 친밀해 질수록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보화와 하늘의 일들을 하나하날 풀어서 알려주실 것이다.하늘의 비밀과 신비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친밀해 지는 것이 중요하다.이것은 사람들에게 배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알 수 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A.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믿음의 주가 되신다.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서 모든 믿는자들에게 한량없는 은혜와 구원을 베푸신다.우리에게 필요한 건 모든 것을 이루신 그분을 단순히 바라보고 믿는 것 뿐이다.그 십자가에 메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자 그들은 영원한 불못에서 영원토록 후회할 것이다.우리는 그들에게 진리되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지 않는가?언제까지 우리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것인가?그들은 죽어가고 있고 우리에게 복음의 소식을 요구하고 있는데,우리는 그 요구에 귀를 닫은채 우리의 문제만을 예수님께 호소하지는 않는가?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A.     성경의 놀라운 은혜의 복음의 말씀이다.구원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고 어떠한 행위도 없고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가신 그 사실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놀라운 말씀이다.여기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부자도 가난한자도 많은 지식이 있는자도없는자도 종교적인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죽어가는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모든 사람이 이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영생을 얻게 된다.구원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다.복음은 복음으로 존재한다.이 믿음에는 어떠한 것도 요구되지 않는다.단순히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면 된다.그 믿음을 우리는 소유하고 있는가?이것은 누구에게로부터 왔는가?성령으로부터 온것이다.그러니 우리는 이 믿음에 있어서도 어떠한 자랑을 할 수 없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A.     이와 같은 놀라운 믿음을 우리에게 주셔서 영생을 얻게 하신 이유는,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 독자를 제물로 바치듯이,하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아들을 우리들 죄인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어주셨다.그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거절했던 인생들을 위해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온전히 내어주셨다.이는 우리 인생들에게 그를 의지하므로 그를 믿음으로 영원하밍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이는 그의 사랑에서 모든 것이 나온 것이다.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고 있는가?그 사랑에 감격하여 모든이들을 우리는 사랑으로 품고 있는가?그가 우리를 이렇게 까지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모든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이와 같은 사랑으로 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A.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기를 원하시지 않으셨다.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하나님은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우리 인생들에게 성경을 통해서 알려 주셨고 예수님을 보내주심으로 우리에게 인생이 얼마나 죄악되었는지을 알려주셨다.그러나 죄를 알려주신 것이지 우리에게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묻지는 않으셨다.다만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자신의 아들이 담당하셨고 그 값으신 십자가의 제물된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주님의 사랑이었다.그러나 우리는 인생들을 성경의 잣대로 심판하며 그들을 정죄하지 않는가?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셨다.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셨고,그 죄에서 구원받도록 길을 제시해 주셨다.우리 또한 이와 같은 행함을 보여야 하지 않는가?세상의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되,그 죄에서 구원 받을 길을 알려줘야 하지 않는가?심판이 아닌,정죄가 아닌,구원의 길을 그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A.     예수님을 믿는자는 심판에서 면죄된다.모든 죄는 사하여졌다.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믿지 않는 자는 더 이상 구원의 길이 없다.이 사실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성경은 증언한다.우리 영혼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이 십자가의 사건을 믿지 않는 그 죄 때문이다.이보다 더 심각한 죄가 있겠는가?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A.     사람들의 죄는 이것이다 빛을 보고 자신의 죄악됨을 보게 되었다.그러하다면 겸손하게 빛으로 나와서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인데,그렇지 않고 인생들은 빛보다는 어둠을 더욱 사랑하여 예수님을 거절하고 더욱 자신의 죄됨 속에 빠져들어가는 것이다.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하신 죄에서 그 해결한 사실을 무시한 채 거짓된 죄악속에 자신을 더욱 밀어넣는 모습이 하나님은 용서하실 수 없으신 것이다.이것은 심판 받아 마땅한 것이다.빛을 보고도 빛을 거절하고 자신의 어둠을 더욱 사랑한 죄 이것이 어찌 용서되겠는가?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A.     악을 행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빛을 미워한다.그리하여 그들은 진리로 다가오지 않는다.그들의 악함의 냄새가 추함이 빛 가운데서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모든 죄의 근원에는 이와 같은 두려움이 존재한다.온전한 사랑이 이 두려움을 좇아내는데,우리에게 온전한 사랑인 하나님의 사랑이 제시되었으나 인생들이 이를 거절했다.이 사랑을 거절하면 우리에게 남은건 어둠과 추함과 두려움과 정죄뿐이다.이를 해결 할 방법은 오직 참된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빛으로 나오는 것 뿐이다.자신의 어둠을 인정하고 빛되신 그분께 우리의 손을 내밀 때 우리는 빛가운데로 나아올 수 있다.그러나 자신을 계속 의지하고 어둠가운데 있는 것을 즐긴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모든 길을 제시하신 그분께 우리를 의탁하자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A.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나온다.우리가 진리인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우리의 행위를 드리게 되면 그것은 빛 가운데서 밝게 빛날 것이다.우리가 진리가 아닌 거짓된 것에 우리 자신을 드린다면 그것은 다시 어둠가운데로 빠지는 행위를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다.우리에게는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되었고 우리에게는 그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성령님이 함께 계신다.모든 것은 가능하다.우리의 의지를 진리에 근거하여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빛 가운데서 평안을 누릴것인가?어둠가운데서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 빠질 것인가?그것은 주를 의지하는 가운데 우리를 주께 의탁하는 행위에 근거한다.오늘 하루도 승리하자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A.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시는데 앞서서 함께 유하시며 라는 구절이 보여진다.예수님은 사역에 있어서 함께 하시면서 모든 것을 행하셨다.함께 제자들과 계실 때 무엇을 가르쳐 주셨을까?무엇을 보여주셨을까?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어떠했을까?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 그것보다 좋은 시간이 그들의 생애 가운데 있었을까?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A.     예수님도 세례를 베푸시고,요한도 세례를 베푼다.요한에게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일이 일어난다.이때 요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사람들은 요한과 예수님 사이에 누구에게 관심을 더 보였을까?중요한 건 요한은 어떠한 경쟁의식도 없었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예수님 또한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말도 없이 자신이 맡은 바 세례를 주는 일을 또한 묵묵히 하고 있다.동역이란 이러한 것이 아닐까?동시에 같은 일을 하고 동시에 여러 사람들이 자신에게 찾아옴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에 대해서 경쟁의식과 질투가 아닌 자신이 할 일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A.     곧 요한의 운명은 옥에 갇히게 된다.그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였고,자신이 맡은바 일에 충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말은 이 땅에서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이 땅에서의 비참한 결말이 영원한 하늘에서의 빛나는 영광으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는 마땅히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일이다.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A.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자신들이 세례를 동시에 베풀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아무런 요동도 없었다.그러나 남아 있는 요한의 제자들은 그렇지 아니하였다.그 또한 세례요한의 가르침 속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계속 들어왔었다.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께 가지 않았다.계속 세례요한에게 남아 있었다.그는 여전히 인기 있는 세례요한을 추종하는 자였을까?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을 좇는 자가 아니었을까?그의 질문은 다음말씀에 전개된다.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A.     그들은 요한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다.요한이 계속 증언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아니 들었다.그러나 그것을 믿지 않았을까?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게 되면 자신이 아닌 그에게로 가야 된다고 가르쳤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가지 않고 요한에게 남아 있었으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세례 받으러 가는 현실을 바라보며 이러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라는 듯한 말투로 예수님께 질문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A.     사람의 존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다.모든 것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다.사람의 권위도 사람이 행하는 어떠한 역사도 위치도 모두 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이다.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하늘에 서 준 것이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거기에 대해서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고 얘기하며 예수님의 권위를 높여 주고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A.     세례요한은 자신이 그동안 가르쳐 온 사실을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단순히 그의 길을 예비할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다시 강조하고 있다.그리고 제자들에게 한가지를 당부하는데,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하는 자들이 너희 제자들이라고 강조한다.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 하였노라
A.     가장 기쁜 이는 신부이다.그러나 그 신랑이 대단한 존재일 경우에,신부의 친구들도 그것을 기뻐한다.세례요한은 자신은 신부가 아니지만 신부의 친구라는 존재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하였다고 고백한다.우리는 그분의 신부인 교회가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독특한 위치에서 신부의 친구로서 존재한다.우리는 더욱 놀라운 신분으로 그분과 결혼한다.그런데 세례요한은 신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쁨이 충만하였다.이는 신랑되신 그리스도예수의 놀라움을 보았기 때문이다.그 놀라움을 본 자,그들은 자신이 비록 신랑의 신부가 되지 못할지라도 그 영광스러운 광경에 참여된 것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하다.그러나 우리 신부된 자들은 그들의 즐거움보다 더욱 놀랍고 커야 마땅한 것 아닐까?만주의 주인되신 그분의 아내가 되다니…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A.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광 받아 마땅하다 .인생은 세례요한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그를 영광스럽게 하고 우리는 쇠하여야 하는 게 인생의 본분이다.우리는 원래 피조물이었고 가진 것이 없어고 단지 그분이 그분의 놀라운 섭리로 우리에게 놀라운 직분을 잠시 맡긴 것 뿐이다.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 아래 주님께서 행하신 것뿐이다.우리는 없다.다만 그리스도 뿐이다.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에 중심이 있는가?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에 중심이 있는가?여전히 나를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가?나는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광받으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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