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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복음

요한복음 1장 35~51절 요한의 두 제자

by ezrabible 2015. 8. 26.
요한복음 1장 35~51절 요한의 두 제자

35절.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     자기 제자와 함께 있었던 요한이 제자들을 어떻게 떠나 보내는지에 대한 장면이다

36절.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요한은 이번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한다.구약에 계속해서 드렸던 양의 제사가 누구를 가르켜서 이루어진 일인지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있었던 요한을 보자.

37절.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     두 제자는 분명 요한의 제자였는데,예수님을 소개하자 마자 요한을 떠나서 예수님께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사람은 사람을 따르기 마련인데,그동안 요한이 얼마나 오랫동안 정성 드려서 자기 제자가 아닌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     우리는 사람들을 나의 제자로 만들길 원하는가?세례요한처럼 오직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기를 원하는가?

38절.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     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으로부터 들었지만 아직 그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지 못했고 단순히 뛰어난 선생으로만 생각했었다.그들에게 예수님은 돌이켜 그들을 주목하였다.
-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는지 질문하나,그들의 대답은 어디 계시는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한다.아마 예수님이 근처에 계셨으나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을까?가까이에 계셨지만 눈이 어두워 예수님이 어디 있는지 잘 알아 보지 못하는 죄인들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일까?
-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보시고 구하는 것에 응답해주기를 바라나,사람들은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조차 모르는 어려움에 빠져 있는 것이 인생의 현 주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가 언제든지 요청을 할 수 있지만,문제는 우리가 그분이 옆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디 계신지 알 수 없는 것이다.먼저는 그가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을 깨달아 알고 그에게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39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     예수님이 계신 곳이 거리가 먼 곳이었을까?아니면 예수님이 계신곳이 어디 구석진 곳이었을까?예수님께서 와서 보라고 말씀하신 후 그들은 예수님을 찾을 수 있었고,예수님이 어디 계신지를 볼 수 있었고 또 함께 거할 수 있게 되었다.
-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도,예수님의 모습이 어떤지도,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초청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된 사실에 감사하자

40절.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     요한의 제자 중 한명은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다.또 다른 한명은 누구였을까?또 다른 한명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41절.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     안드레가 자기 형제 시몬에게 찾아가 말한 첫마디는 메시야를 만났다는 것이다.그들은 계속적으로 메시야를 기다렸으며 그 감격의 순간이 우리 시대에 나왔다는 말을 베드로에게 전한다.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얼마나 감격적이었을까?
-     잃어버린 영혼에게 가장 필요한 구세주인 메시야가 전해질 때 그들이 오랫동안 메시야를 찾았던 일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계속 일어 나고 있는가?그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지 않는가?

42절.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나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     평생을 기대하였던 메시야인 예수님을 만났는데,그 메시야의 첫마디는 나를 알아보는 것이었다.나는 네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베드로는 얼마나 감격했을까?그 뿐만이 아니다.그의 이름도 베드로로 바꿔줄 것을 예언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는 얼마나 놀랍고 가슴 뛰는 흥분속에 있었을까?
-     베드로가 그렇게 열정적이고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이유 중에 아마 이 첫만남의 놀라움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베드로에게는 그가 누구인지 아셨고 또 그에게 장차 있을 일을 첫만남을 통해서 이미 예언해주시는 그 주님의 모습을 통해서 베드로가 느꼈던 감격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     우리가 구원받을 때 예수님이 누구인지 우리는 그 모습을 보았고,또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실지를 보았으며,또 이름을 바꿔주셔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 받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우리 또한 베드로와 동일하게 예수님에 의해서 새로운 이름을 부여 받았다.베드로는 반석이라는 의미였는데,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새롭게 부여받은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43절.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신 것을 볼 수 있다.갈릴리로 갈려는 계획에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을까?아니면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이었을까?그 뜻을 아시고 빌립을 만나러 발걸음을 옮기신다.그리고는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엄위한 주님의 말씀을 보자.
-     지금도 주님은 여러가지 상황가운데서 다른 어떠한 것이 아닌 자신을 따르라고 우리에게 명하시고 촉구하신다.우리는 이에 순종하는가?명령에는 오직 순종밖에는 없다.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거짓에 속지말자.

44절.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뱃새다 사람이라
-     벳새다 지역,이곳은 어디이길래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는가?왜 수도인 예루살렘에서는 제자들이 배출되지 않고 이러한 뱃새다 지역 같은 곳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출되는가?또 그들의 직업은 어떠한가?

45절.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     나다나엘 그는 누구였기에,빌립에 예수의 제자가 되고 나서 그를 찾아 나섰을까?그를 찾은 후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 기록된 그리스도를 만났음을 소개하고 있다.그는 다름 아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소개한다.아마 그들은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6절.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     나다나엘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으나 분명히 알지는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성경에 그리스도가 태어날 곳과 그가 어떻게 이름이 불릴지에 대해 기록되었으나,그는 그것을 분명히 알지는 못했다.그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분명히 알지 못했던 일이긴 하다.우리도 성경을 알고 있으나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지는 않을까?
-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직접 보면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을거라고 증언하면서 더 이상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가장 강력한 촉구를 하는 것이다.보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나 또한 그리스도를 이 땅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이 확실한 증거 아닐까?무엇으로 보여줄 것인가? 환상이나 병고침인가?그런 것이 아니다.성경말씀이다.

47절.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없다 하시며 예수님을 믿지 못했지만,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참 이스라엘 사람이고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평가한다.이 얼마나 놀라운 평가인가?죄인인 인간에게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이 거짓된 것이 없다고 평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나다나엘은 참으로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48절.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     나다나엘이 과거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는 예수님의 대답에 나다나엘이 얼마나 놀랐을까?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항상 살펴보시며,우리가 예수님을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그분은 항상 우리를 주목하시고 살펴보신다.

49절.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임금이다라는 진리가 깨우쳐졌다.많은 이야기를 예수님이 하지 않았지만,나다나엘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깨달았다.아마 그가 이미 성경을 통해 진리를 충분히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우리의 마음이 성경으로 충분히 적셔져 있다면 어떠한 얘기를 잠깐 듣더라도 그동안 들었던 성경말씀의 진리들이 그 사실과 연관하여 더욱 분명히 깨달아 질 것이다.

50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     나다나엘에게 보여줬던 예수님의 놀라움은 예수님께서 온 천지 만물에 항상 계신다는 놀라운 사실이였다.예수님이 이 땅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그 사실,그것으로 인해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믿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이미 충분히 놀랄일을 맛보았는데,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그보다 더 큰 일을 볼것이볼 것 그것은 얼마나 놀랄 일일 것인가?
-     우리 또한 주님으로 인하여 놀라운 일을 경험한 자들이다.그러나 이 육체를 벗어나고 영원의몸을 입게 될 때 하늘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그 때는 정말 놀랍고 큰 일들을 보게 될것이다.그것이 우리의 소망인데 우리는 그것을 믿는가?

51절.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     그리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주목하여 보자.그 시작이 하늘이 열린다고 하였다.더 놀라운 일은 이 땅의 기적이 아닌 것이다.그것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고 하늘에 있는 것이다.이 땅에 있는 것은 놀라워봤자 그 한계가 분명하다.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들 것 한계가 없으며 우리를 가장 놀라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     하늘이 열린 이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인자)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고 했다.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이 땅으로 친히 내려와 예수님께 찬양을 드리는 모습인가?그것이 어떠한 모습이든 우리의 관심을 이 땅이 아닌 하늘로 옮기우기에는 충분하다.우리는 이 땅에 소망이 있는가?하늘에 소망이 있는가?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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