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신[본회퍼] - 저항과 복종 (복있는 사람)
P288 ~ P290
테겔 1944년 5월 29일
자네 부부가 공습경보를 무릎쓰고 아릅답게 따스한 이 성령 강림절기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만끽했으면 좋겠네. 삶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내적으로 거리 두는 법을 차츰차츰 배우는 것이지. "거리두기"라는 표현을 쓰고 보니 너무 부정적이고, 너무 형식적이고, 너무 인위적이고, 너무 냉정한 말처럼 들리는군.
차라리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네. 이를테면 이 일상적인 위협들을 자기의 삶 전체에 끌어들여 품는 것이지. 내가 이곳에서 거듭 확인하는 사실이 있는데,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이네. 이곳 사람들은 폭격기들이 다가오면 걱정만 하고, 좋은 먹을거리가 있으면 탐욕만 부리며, 바라던 바를 이루지 못하면 절망만 하고, 무언가를 이루면 다른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네. 그들은 충만한 삶을 무시하고, 자기 삶의 전체성을 무시하네. 그들에게서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이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 마네.
반면에 기독교는 우리를 삶의 다양한 차원 속으로 동시에 밀어 넣네. 우리는 하나님과 온 세상을 어느 정도 우리 안에 품고 있지. 우리는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네. 우리는-나는 지금 공습경보로 다시 중단하고 밖에 앉아 햇빛을 즐기고 있네- 우리의 목숨을 걱정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의 목숨보다 훨씬 중요한 사상을 사고하지 않으면 안 되네.
예컨대 공습경보가 울리는 동안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다시 말해 우리 주위에 평온을 퍼뜨리는 과제 쪽으로 전환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네. 그래야 삶이 단 하나의 차원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되네. 삶의 차원이 다양해지고, 삶의 음도 다양해지지.
사고할 수 있다는 것과 사고의 다차원성을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해방이나 다름없네. 이곳 사람들이 공습을 두려워할 때마다, 내가 거의 규칙 삼아 하는 말이 있네. 이러한 공습이 더 작은 도시들에 훨씬 더 심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단선적인 사고방식에서 사람들을 벗어나게 해주어야 하네. 이것은 신앙의 "준비", 혹은 신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네. 여러 차원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에게 공습경보를 무릎쓰고 이 성령감림절 기간을 경축하게 하는 것은 신앙 그 자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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