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급여를 받고 있는가? 아니면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고 있는가?
19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정착된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한국사회도 일부 자영업자들, 사업가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회사나 어떠한 조직에 속하여 급여를 받는 노동자들이다.
회사를 다니는 많은 이들이 창업을 꿈꾼다. 창업을 꿈꾸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이들은 적다.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이유 중 가장 큰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수 없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회사생활을 하면 여러가지 어려운 고충들이 많지만 가장 좋은건 달마다 항상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은 매달 동일하게 들어오는 수입에 맞게 생활 패턴이 맞추어져 있다.
또한 그 수입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 이유는 매달 나가야 하는 대출이자, 카드값 등이 있다.
당장 그달의 수입이 들어오지 않으면 대출이자와 카드값에 대해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것이 대부분의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생활패턴일 것이다.
어찌보면 자본주의의 피해자일수도 있으며, 그 피해자라는 인식을 하기 전에 이러한 자본주의를 스스로 즐기는 대부분의 대중의 힘일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그 사회 체제속에 살면서 그 자본주의가 말하고자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알지 못한채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안타까운 현대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바쁜 생활가운데 우리는 월급을 받으며 살지만, 그 월급을 주신이가 '하나님'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 하나님이 주신 월급이라고 믿는이들은 얼마나 될까?
내가 그 '믿음'이 있는지 알아보는건 어렵지 않다.
당장 다음 이직할 직장을 구하지 않은채, 사직서를 낼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보면 된다.
이 말이 너무 급진적인가? 물론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급진적'이기보다 우리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많이 익숙해져서 '성경'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관가 멀어져 있다고 보는것이 더 올바른 견해같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이들이다. 입술로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는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행함으로 삶으로 그것을 실천에 옮긴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사실 가장 기초적인 필요인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고 입히신다고 말은 하지만, 그 말을 실천에 옮겨서 사는 이들은 극히 소수인듯하다.
일부 선교단체들은 Faith Mission을 실천한다. 후원자를 모집하지 않고 죠지뮬러와 같은 기도로 또한 믿음으로 자신의 경제적 필요를 공급받고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단체들의 가치관은 참으로 우리에게 모본이 되는것 같다. 그렇다고 후원자를 모집하고 그 후원자들로부터 생활비와 사역비를 지원받는것이 성경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 어느것이 더 가치가 있다라고 말할수 없지만, 우리는 Faith Mission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시대인것 같다.
사실 Faith Mission이라고 명칭이 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이 Fatih Mission 아닌가 생각해본다. 세상적인 직업을 가지지 않고 사역하는 사역자들이나, 세상직업을 가져서 일정 월급을 받고 있지만, 그 직업을 주신이와 그 사업을 잘되게 하셔서 월급을 받을 수 있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세상직업을 가진 이들도 Faith Mission이어야 한다. 물로 그 구조상 우리가 믿음을 실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기본 정신은 그렇게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을 가지지 못하면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어느 순간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게 된 돈이고, 현대 자본주의가 탄생하였던 배경처럼 나 또한 이윤을 축적하는 자본가가 되고자 하는 욕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나님이 아닌 돈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먹여살린다는 생각보다는 통장의 잔고가 우리를 먹여살린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통장의 잔고가 의지의 대상이 되고, 통장의 잔고가 떨어지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기 보다는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에서 자유로울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될까 싶다? 나 또한 이런데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찌보면 자본주의의 혜택을 맛보며 사는 현대적인 그리스도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폐해속에서 괴로워하는 안타까운 그리스도인들인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우리의 가치관을 다시 정립해야 할까?
먼저는 자본주의가 확립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정착된 핵심적인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
"역사상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는 농업의 시작과 함께 제한적으로 존재하여 왔다. 일부 학자들은 중세의 길드를 자본주의적 관계의 맹아로 파악하기도 한다.(일례로 도제를 임금 노동자의 기원으로 파악하는 것) 그러나 중세 사회는 신분제에 의한 제한, 과도한 세금, 지역마다 부과되던 관세, 강제로 부과되는 고율의 이자 등으로 인해 이윤을 창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영국에서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 이윤을 축적한 자본가가 등장하였으며 19세기에는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정착되었다."
위의 내용을 보면 이전 시대에서는 개인이 이윤을 축적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그런데 18세기부터 이윤을 축적하는게 제도적으로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 말의 핵심은 자신의 신분배경과 상관없이 이윤을 축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모든 개인에게 열렸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 이윤을 축적하는데 성공한 개인들은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지배계층으로 상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에 성공한 지배계층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자본주의가 나쁜체제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본주의 체제속에서 우리 인간의 욕심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돈을 모으는것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는가?
잠언 23장 4~5절
4절.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절.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성경은 '부자'는 '죄인'이다 라고 말한적은 없다. 성경은 항상 부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지만, '부' 자체를 '죄'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많은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중에 '부자'들이 많았다. 그들이 부자 되기에 애쓴 적은 없겠지만, 그들은 부자가 된적이 많이 있었다. 그러므로 부자를 우리의 잘못된 가치관으로 나쁘게 보는 시선은 버려야 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건 성경은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것을 얘기한다. 그 '부'는 허무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재물'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갑자기 날아가 버릴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주위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를 살펴보자.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태복음 6:11)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누가복음 11:3)
분명 오늘날의 상황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그 기본 정신은 지금도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루하루 살아갈것과, 그 하루에 필요한 양식을 주님께 기도로써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생활양식은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지키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한달 월급을 받고 있으며, 또한 공무원이나 평생직장이 가능한 이들은 하루가 아닌 노인이 될때까지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기 때문이다.
노후대책까지 다 가능한 사람이 이러한 기도를 과연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에게 양식이 넘치고 매일매일 먹는것에 대해서 모든 필요가 다 채워져 있는데 위의 기도는 도데체 누구에게 적용이 가능한 기도일까? 저 기도는 일정한 봉급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과, 그리고 사역비가 적은 사역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기도일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위와 같은 기도를 가르치면서 '사역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기도라고 언급을 했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봐도 그와 같은 특정 대상은 찾을 수 없다.
출애굽기 16장 4절
(개역개정)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공동번역) 그러자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먹을 것을 내려줄 터이니, 백성들은 날마다 나가서 하루 먹을 것만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리라.
출애굽기 16장 4절의 공동번역을 보면 '하루 먹을 것만' 거두어 들이게 하라고 번역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하루', '하루'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갈 것에 대한 중요성을 여러번 언급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개척하고 우리 삶을 '돈'으로 보호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의지하기보다는 통장의 잔고와 안정적인 직장을 의지하는게 쉬운 현대인의 삶 아닐까?
성경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한번도 가볍게 여긴적이 없다. 우리에게 먹고 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한 가정에 대한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성경은 게으른 자들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으며, 열심히 일할것을 계속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이 또 강조하고 있는 것은 열심히 일하더라도 그 '일자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그 '일'로 인하여 받게 되는 물질적인 축복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이 주신 축복아래 살면서 그 축복인 '안정적인 직장', '통장의 안정적인 잔고'를 의지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주신 하나님을 매일 매일 신뢰하며 살아갈 것을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급여를 받고 있다고 믿는가? 아니면 안정적인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가진 통장의 잔고가 내 힘으로 번 돈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복인가?
그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것인가? 아니면 사용할때마다 주님께 결재를 받고 써야하는 것인가?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나는 하나님 안에서 경제적인 쉼을 누리고 있는가?
나는 통장의 잔고를 바라보며 경제적인 쉼을 누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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