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이렇게 물었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그럼 우리 아들은 이렇게 곧잘 대답했다
"아빠도 좋고 엄마도 좋아!"
이제 내년이면 우리 아들도 7세가 된다.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나로부터 떨어져서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걸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 아들은 여전히 아빠를 필요로 하고 아빠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걸 안다.
그러나 시간을 보내는데에 있어서 예전처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유치원도 다니고, 혼자 한참을 놀기도 하고 기타 등등..
초등학교 들어가고 중,고등학교 들어가고 대학생이 되면 더더욱 아빠랑 보내는 양적인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어렸을적부터 그때까지의 총체적인 양적인 시간은 계속 축척되고 늘어날 것이다.
오늘 아침에 사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터닝메카드에게 주영이를 빼앗겼다는 생각? 그리고 뺏길것 같다는 생각?
그래서 위와 같이 질문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주영이의 대답에 나름 안도감을 가진것일까?
그러면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드러나는 행동에 의해서 나 자신도 상대방도 평가하는 것 같다.
내가 성경을 본다면, 내 스스로 나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어 라고 생각을 할 것이고..
내가 밥을 먹는다면, 그 순간은 일반적으로 나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강한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성경을 보는 행위로 인하여 내 스스로 안도감을 가지기가 쉽지만,
기타 다른 행위들(밥을 먹거나, 씻거나, 아이들과 놀거나, 버스를 타거나, 청소를 하거나, 물건을 사거나 등등)을 통해서는 안도감(?)을 잘 가지진 않는다.
왜 그런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많은 것들이 마음의 동기보다는 행위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주영이가 오늘 아침에 터닝메카드에 빠진 모습에 불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도 성장하면서 부모와 계속적인 친밀감이 상승하지만, 그것이 꼭 항상 부모와 무엇을 함께 하는 것만은 아니듯이..(그러나 그의 마음의 심중은 부모님의 존재가 크게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도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친밀감이 상승하지만, 그것이 꼭 겉으로 드러나는 어떠한 종교적인 행위(?)가 많아지는 것만은 아니다 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의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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